다도의 의미
다도(茶道)가 체계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중국 당(唐)의 육우(陸羽, 733-804)가 8세기 중엽 (다경(茶經))을 지은 때부터 였다. 그 뒤 다도는 중국을 비롯해 우리나라와 일본 등으로 유포되었다.
일반적으로 다도란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차를 좋은 물로 알맞게 우려내어 맛있게 마시는 한 방편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아울러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李奎報)의 시에 "… 한 잔 차로 곧 참선이 시작된다(… 一구卽是參禪始)" 고 했으니 자기를 돌아보는 여유로움 또한 지니면 좋을 것이다.
다도(茶道)의 사전적 의미
- ㄱ. 차를 다루고 끓이고 마시는 바른 방법이라는 현상적 의미
- ㄴ. 바른 다법(茶法)으로 얻어지는 진리(眞理) 혹은 지경(至境)을 뜻하는 철학적 의미가 있다.
다도란 말이 쓰여진 연원을 살펴보면 8세기 말 당(唐)의 봉연(封演)이 쓴 글에, "이로부터 다도가 크게 성행하였다(於是茶道大行)" 라고 한 것으로, 차를 다루는 기법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후 명(明)의 장원(張源)은 (다록(茶錄))에서, "차를 정성들여 만들고, 건조하게 저장하며, 깨끗하게 우리면 다도를 다한 것이다" 라고 하여, 차를 다루는 바른 방법을 다도(茶道)라 하였다.
우리나라는 초의(艸衣)가 처음 '다도(茶道)'라는 말을 썼다. 그는 다도를 설명하기 위해서 (동다송(東茶頌))을 썼다고 했으며, "조주풍(趙州風, 쉼터의 '끽다거' 참조)의 다도(茶道)가 잊혀져 알지 못하므로 (다신전(茶神傳))을 쓴다" 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그가 김명희(金命喜)에게 쓴 글에서는, "수체(水體)와 다신(茶神)이 열리어 정기(精氣)가 들어오니 곧 대도(大道)를 이루게 된다" 고 하여, 다도를 대도로 보았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 보면, 초의가 쓴 다도의 뜻은 바른 다법을 행함으로써 얻어지는 큰 진리라는 철학적 의미로 썼음을 알 수 있다. 또 근세의 사학자 이능화(李能和)가, "차는 하나의 도(道)이다. 따라서 선(禪)에 속한다", "다도(茶道)에는 심오한 이치를 깨닫는 깊은 조예가 있다" 고 한 것이나, 문일평(文一平)이, "다도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도 선승(禪僧)이 될 것이다" 라고 한 것도, 다도(茶道)의 뜻을 '차를 통해 깨닫는 오묘한 진리와 그 경지'의 뜻으로 쓴 것이다.
이러한 다도가 실제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당(唐)의 육우(陸羽, 쉼터 참조)가 (다경(茶經))을 짓고(760), 호주자사(湖州刺史)인 안진경(顔眞卿)이 삼계정(三癸亭)이라는 다정(茶亭)을 지어 육우에게 기증한 773년이었으며, 그 이념은 (다경)에 적혀 있듯 '중용검덕(中庸儉德)'이었다. (차의 역사(茶史)에서 (다경(茶經))의 의미는 실로 크다. 단순한 약초이자 음료였던 차가 정신적인 갈등을 채워주는 음료로 격상되었는가 하면, 시와 그림의 주제, 사고의 소재가 되었으며, 차를 마시며 어떤 주제에 대해 논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삶의 시름을 잊게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가 실용적 음료로 발전한 오늘날의 중국과 대만에서는 다도라는 말보다는 '다예(茶藝)'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또한 일본에서는 17세기 초에 다도(茶道)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하였으며, 다도의 뜻을 차를 다루는 기예(技藝)라는 뜻과 더불어 그 행위의 배후에 있는 도(道)라는 의미로 쓰여, 그 뜻은 일본과 우리나라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일본의 다도는 정신을 배경으로 한 다사행위(茶事行爲)가 중시되고, 우리의 다도는 다사의 과정을 통해 정신(精神)을 다스리는 것을 중요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